Copyright by Kim Hee 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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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2. 실증주의 과학관의 탄생과 객관적 지식으로서의 과학지식 2-1. 개념에 대한 조작적 정의 2-2. 실증주의 과학관의 탄생 3. 상대주의 과학관의 시작 :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 3-1. 칼 포퍼의 반증주의 3-2.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 3-3. 패러다임이론이 가지는 상대주의적 함의 4. 사회구성주의 :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과학지식 4-1. 에든버러 학파의1세대 과학지식사회학 – 스트롱 프로그램 4-2. 스트롱프로그램의 네가지 명제와 지식결정의 벡터모형 4-3. 스트롱프로그램의 한계 4-4. 2세대 과학지식 사회학 : 거시적 연구의 탈피 - 실험실연구 5. 구성주의 : 구성물로서의 과학지식 6. 사례연구 : 실증주의 과학관과 상대주의 과학관, 서로다른 관점으로 읽어보기 7. 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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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나는 지난 1월 8일 <논리와 비판적 사고>라는동계학기 수업에서 책을 읽고 발표를 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엔 홍성욱[1]씨의 <과학은 얼마나>[2]의 1장을 읽고 논평했었는데[3], 이 논평은 사회구성주의를 간단히 요약하여 설명하고 홍성욱씨의 사회구성주의적 주장을 평가하는 글이었다. 나의 발표가 끝난 후에는, 역시 예상할만한 반응 – 특히 보편적진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과학도들의 강력한 반발 – 이 있었다. 평소 생활에서도 주변인들에게 사회구성주의나구성주의를 소개할 때, 항상 돌아오는 반응은 한결 같았다. “과학은 보편적 진리 아닌가? 그러니까 과학이라고 하는거잖아.”
현재 내가 취하고 있는 과학관은 상대주의적 과학관 중사회구성주의 과학관과 제일 가깝다. 누구보다 과학적 사고에 충실했던 과학도로서, 2년전까지만 해도 철저한 칸티언으로의 사유를 해왔지만, 이후 “진리에는 주체가있다”는 생각이 나의 사유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과학의객관성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였다. 이후 공부한 탈근대적 사고 등이 내 사유속 과학의 객관성을 흔들기시작하였고,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4]를접하고, 과학사회학 공부, 사회학 이론 공부를 진행하면서내 사유속의 근대성은 해체되고 있다. 고백하자면 - 나와같이 과학도에서 인문학도로 전환한 자들끼리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 여전히 칸티언 적인 요소가 남아있다. 하지만과학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라고 누군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현재의 나는 “과학은 사회적 요소에 의하여 구성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아직까지는 브루노라투르(Bruno Latour)식의 구성주의를 받아들이기에는 여전히 사물까지 주체로 인정하는 면에 대해서적어도 이해(Empathy)를 할 지언정, 공감(Sympathy)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과학의 객관성에대한 논의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살펴보자.
천문학혁명과 물리학혁명으로 이어지는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합리주의, 베이컨(Francis Bacon)의 진리관, 오귀스트 콩트(IsidoreMarie Auguste François Xavier Comte)의 실증주의등으로 대표되는 과학적 세계관/진리관은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우월한 지위를 가진 ‘객관적 지식으로서의과학’을 구성하게 되었으며 이 경향은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진다.
19세기 중반, 토머스 쿤(Thomas Samuel Kuhn)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 이론을 주창하게 되고, 상대주의적 과학관으로의시작의 계기를 마련한다. 토머스 쿤은 언제나 완벽한 가설/이론이란없고, 과학이란 ‘정상과학의 위치를 차지한 과학’을 말함을 주장하며 본인은 동의하지 않지만, 과학의 객관성의 도전을 시작하는 원천을 제공하게 된다.
실제로 토머스 쿤의 시대 이후에, 상대주의적 과학관은 크게 사회구성주의학파와 구성주의학파, 이렇게두개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특히 사회구성주의 학자들은 토머스쿤의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스트롱프로그램을만들어내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상대주의적과학관은 “과학지식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하는 사회구성주의 과학관과 “과학지식은 사회적 요소 뿐만 아니라 모든 요소, 심지어 사물적 요소에 의해서도 구성된다”라고 주장하는 구성주의적 과학관으로 나뉘며, 크노르세티나(Karin Knorr-Cetina) 식의 포스트 구조주의적과학관까지 존재하게 된다. 덧붙여 사회구성주의는 크게 데이비드 블루어(DavidBloor)를 중심으로 한 에든버러 학파의 1세대 사회구성주의 과학관, 그리고 1세대 사회구성주의 과학관의 거시적 요소에 치중된 이론에반발하여 민속방법론적 연구를 차용하여 탄생한 해리 콜린스(Harry Collins) 등의 2세대 사회구성주의 과학관이 있다.
지금까지 실증주의 과학관과 이에 대한 객관성에 도전하는상대주의 과학관에 대해 조망해보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더 자세히 들어가 각 이론은 어떻게 구성되며그 이론들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가 존재하는지, 또한 각 이론의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2. 실증주의 과학관의 탄생과 객관적 지식으로의 과학지식
개념에 관한 조작적 정의
실증주의와 상대주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글을 관통하는 실증주의의 의미는 ‘실재론’적 과학관을의미한다. 여기서 말한 실증주의는 논리학과 수학이라는 선험적 진리를 가정한 체, 독립적인 하나의 개념체계가 존재하고 이에 따른 보편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칸트의 사상에 그 철학적 기원이 있으며, 가장 가까이는 오귀스트 콩트가 주창한 실증주의라고 이해하면 논지의 이해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관념론적 사고라든지 실존적 사고와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상대주의도 마찬가지다.사실상 상대주의는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등의 구조주의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푸코(Michel Foucault) 등의 후기 구조주의, 데리다(JacquesDerrida)의 해체철학, 바우만의 (Zigmund Baumann) 사회학 등으로 대표되고 이를 사상적 기반으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와 궤를 같이한다. 사실상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도 위 글의 논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진리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체계인 실증주의진리관의 안티테제로 이해하여도 될 것이다.
실증주의 과학관의 탄생
실증주의 과학관에 대하여 살펴보자. 실증주의는 앞서 말하였듯이 오귀스트 콩트의 용어이다. 콩트는 학문이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 실증적 단계에 거친다고 생각하였고, 당시의 사회세계의 지식단계가 실증적 단계에 도달하였다고 생각하였으며, 이과정에서 ‘경험적’ 지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검증주의적 지식관을가지게 된 것이다. 더불어 콩트는 이러한 ‘과학적 방법론’을 사회과학에도이식하려 하였고, 결과적으로 사회철학에서 사회과학을 분리해내기도 하였다.[5][6]
경험주의, 혹은귀납주의로서의 강조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진리관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베이컨은 이원론적 사고에 기반한정신과 육체의 분리를 통해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였고, 철학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기존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철학을 부정하고 자연과학적 지식의 유용성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실제적 근거에 기반한 그의 철학은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기에 이에 의지해 인간의 경험을 강조하고, 경험주의에 기반한 귀납적 방법론을 창시해내었다. 이 경향은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전체적인 과학의 연구에서 나타난다.[7]
마지막으로 실증주의에 영향을 준 사상은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적인기계론적 세계관이다. “Cogito Ergo Sum”으로 대표되는데카르트의 명제에 의하면, 육체는 일종의 환상일지언정 사유는 그렇지 않다. 이는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고, 경험을 강조하는 베이컨의 철학과도닮아있으며, 이러한 점들에서 이원론의 완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인간이성의 합리성과 기계론적 사고가 도출되며철저히 결정론적이다.[8]
코페르니쿠스(NicolausCopernicus), 보일(Robert Boyle), 뉴턴(Isaac Newton), 갈릴레오(Galileo Galilei) 등의학자들이 주도한 17세기 과학혁명은 과학에의 신봉을 야기하였고, 콩트의실증주의, 베이컨의 진리관과 경험주의,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와기계론적 사유를 지적 근원으로한 실증주의 과학관의 세계가 도래하게 된다. 그리고 과학은 철저히 객관적인, 모든 지식에서 최고우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3. 상대주의 과학관의 지적 토대
: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이론
칼 포퍼의 반증주의
칼 포퍼의 이론의 구성에 대한 이론은 ‘반증주의’라고 불리는 이론이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증’(falsification)과정이 그 핵심이며, 후건부정식(modus tollens)라고 부를 수도 있는데, ‘반증’과정은 사전에 ‘반증자’(falsifier)를 사전에 설정하고, 이후에 반증자가 나올 경우 그 이론은 기각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반증자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이론으로서의 지위를 잠정적으로 유지하게 되는데, 포퍼가 ‘과학’이라고 구분한 지식은 ‘반증 가능한’이론이다. 그러므로 반증자를 많이 가진 이론일수록, 반증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이론을 ‘견뎌내면서’ 이론이 강화되고 지식이 축적되어 이론이 구성되고, 진리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9]
포퍼의 이론은 실증주의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포퍼의 이론에 따르면, 이론의 구성의 궁극적 결과는 진리에의 접근이라는 점에서 포퍼는 보편적 지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실재론적 관점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
쿤의 이론은 어느 주어진 시기에 당면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이론은 존재하지 않으며, 완벽한 이론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포퍼의 반증주의에 의하면 모든 이론은 항상 기각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다.[10] 쿤의 이론에 따르면 정상과학(Normal Science)은 언제나 불완전한 상태로 정상과학의 자리를 차지하며, 자료와 이론은 언제나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그의 이론은 ‘조정을 위한 조정’(Ad Hoc Adjustment)라고 함축할 수 있는데, 지식의 성장은 관찰에 대한 도전에 따른 이론의 조정이기 때문이다.
쿤은 ‘패러다임’개념을 통해서 이론의 구성을 설명한다. 패러다임이란 과학집단의 실천방식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종의생활양식으로서 실천자들의 암묵적지식과 인식론적 범위와 사유관을 규정하는 그 무엇으로, 모든 실천자들은 자신들의 패러다임 하에서 사고를 하고 행동을 하게 된다.
쿤의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이론의 등장은 ‘패러다임의 전환’과정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패러다임은 하나의 관찰에 대한 해석방법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이론과 관찰은 일치하지 않으므로, 필연적으로 변칙(anomalies)이 생기게 되고.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정상과학의 실천자들은 자신의 이론을 지키고 싶어하므로, 이론을 통해 이 변칙 등을 조정하려는시도를 하게되는데, 이러한 변칙의 조정, 즉 Problem Solving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변칙들이 축적(accumulation)되게 되는데, 그 결과 패러다임의 위기(Crisis of Paradigm)가 발생하고, 이 변칙들을 설명하는 군소 패러다임이 등장한다. 이들 군소패러다임은, 경쟁을 통해 특정 패러다임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게 된다.[11]
패러다임이론이 가지는 상대주의적 함의
과학적 지식 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의 대상이 연구자의 개념체계에 의존적이므로 연구자의 개념체계로 부터 독립적인 지식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주장은 실증주의 과학관/진리관이나 상대주의 과학관/진리관이 공유하고 있는 입장이다. 다만 두 진리관의 차이가 있다면 ‘연구자의 개념체계’가 하나의 보편적 개념체계이냐 여러개의 다원적 개념체계가 존재하느냐의 구분이다. 전자가 실증주의 과학관/진리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후자가 상대주의 과학관/진리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식이 맥락에 의존되며 지식간 관계에 의해 규정된다고 생각하는 생각은 상대주의 과학관/진리관 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쿤의 이론이 어떠한 진리관/과학관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쿤은 여러개의 패러다임을 상정한다. 즉, 정상과학 패러다임과 군소 패러다임이다. 이 패러다임들은 한 시대에 여러개가 존재할 수 있다.(Randall Collins의 연구에 따르면 모든 시대에서, 한 시대에 약 3개의 패러다임만 살아남고 나머지 패러다임은 도태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즉, 쿤의 이론에 따르면 한 시대에 여러개의 다원적 개념체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쿤의 이론에 따르면, 연구자가 자신의 패러다임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은 ‘그 패러다임이 맞을거라는’ 혹은 ‘현재 정상패러다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아니하더라도 나중에는 정상패러다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faith)이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볼 때, 연구자의 지식은 믿음에 기반한 맥락에 의존되게 된다. 맥락의 보편적 구성이 아닌 믿음에 의한 맥락의 비합리적 구성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쿤은 실제로 자신이 상대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고있지만, 나는 쿤의 이론이 상대주의적 이론이며 위의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4. 사회구성주의 :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과학지식
에든버러학파는 과학적 지식의 ‘사회적 구성’을 연구하였는데, 이들은 과학지식도 사회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회인식론적 기반인 ‘스트롱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스트롱프로그램의 탄생으로 과학지식의 사회적 구성성의 논의는 급속히 전개되었고, 이후 기존에 스트롱프로그램에 반발하여 새로운 과학지식 사회학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회구성주의는 과학지식사회학과 동치시켜서 지칭할 수 있으며, SKK로 줄여서 말하기도 한다.[12][13]
에든버러 학파의 1세대 과학지식사회학 – 스트롱프로그램
스트롱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분파는 데이비드 블루어(David Bloor)를 중심으로한 SKK로, 스트롱프로그램을 만들어내었다. 스트롱프로그램은 철학적 기원을 통해 ‘의미의 한정주의’를 만들게 된다. 스트롱프로그램의 기원은 크게 후기 경험주의 과학철학과 토머스 쿤의 연구, 그리고 에밀 뒤르켐의 사회학적 직관으로 나눌 수 있으며[14], 특히 후기 경험주의 과학철학과 토머스 쿤의 연구에서 받은 영감은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관찰명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함축할 수 있다. 즉 경험을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해석은 동반될 수 밖에 없으므로, 과학지식의 구성역시 해석적 지식의 총합이라는 것이다. 뒤르켐의 사회학적 직관은 분류에 대한 영감으로, 지식의 문제는 그 사회가 구성시켜온 집단 표상의 문제이며 집합의식은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이 세가지 지적기원을 통해 구성된 ‘의미의 한정주의’는 결과적으로 과학지식이 외부세계를 객관적으로 재현할 수 없기에 과학이론과 외부사이에는 구성적 관계가 존재하며, 그러므로 틀린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과거의 과학이나 옳다고 생각하는 현재의 과학 모두 사회적으로 구성되었으며, 지식의 타당성도 사회학적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트롱프로그램의 네가지 명제와 지식결정의 벡터모형
스트롱프로그램이 어떻게 과학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을 제시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스트롱 프로그램의 네가지 명제를 알아야 한다. 네가지 명제 혹은 네가지 원칙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공평성의 원칙, 대칭성 명제, 인과성 명제, 성찰적 명제이다. [15]공평성의 원칙은 합리성 혹은 비합리성에 대하여 연구자 자신의 사전적 판단을 분석에 개입시키지 않을 것, 대칭성 명제는 설명양식에 있어서 대칭적일 것, 즉 같은 원인으로 참 된 믿음과 거짓된 믿음을 설명해야 할 것, 인과성명제 믿음이나 지식상태를 낳은 조건과 관련하여 인과적인 설명을 할 것, 성찰적 명제는 위 세가지 원칙을 사회학에도, 즉, 스트롱프로그램에도 적용시켜 해석할 것이다.
여기서 특히 관심있게 보아야 할 것은 특히 인과성 명제를 통해 강화되는 지식 결정에 대한 벡터모형이다[16]. 데이비드 블루어의 경우 지식(결과적인 믿음)은 선행하는 믿음(과거의 믿음)과 경험의 벡터합으로 규정된다고 이야기 한다. 즉, 이미 존재하는 분류 네트워크 속의 자연적 합리성은 외부속성에 대한 집단의 새로운 경험과 이에 따른 해석을 통해 새로운 지식으로 확증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 결정의 벡터모형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합의는 선행된 믿음 자체가 실천자의 사회나 그 사람의 사회화과정, 사회적위치, 환경적맥락을 통해 형성된 맥락이 자연세계 관찰의 필터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것을 본다는 것과 동시에 이러한 믿음은 실천자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회적으로 공유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사회학 적인 이해관계에서 충돌했다고 보는 사회구성주의의 논쟁 해석이 의미가 있어지는 것이다.
스트롱프로그램의 한계
스트롱프로그램의 한계는 여러 지점에서 나타난다. 첫째, 과학지식에 대한 거시적인 차원의 사회학적 분석만 진행한 나머지 미시적 분석으로의 과학지식에 대한 사회적 분석이 부재하다. 즉, 실천자로서의 연구자에 대한 분석을 할 수가 없다. 과연 과학지식이 객관적인지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지식을 구성하는 주체가 실천자라는 점에 착안하여 실천자의 실천이 과학연구를 이끌어간다는 데에 있어서 과연 과학실천자의 판단은 객관적인지, 혹은 과학실천집단의 판단은 객관적인지 분석해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스트롱프로그램에 의하면, 왜 과학지식이 인식론적, 물질론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내지 못한다. 즉 이를 설명하려 할 경우, 새로운 지식의 벡터를 해체하여 이전 지식의 벡터와 경험의 벡터를 분리해낸다 하더라도, 이전 지식의 벡터를 다시 분리해야 할 것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위 설명을 위해 같은 행위를 무한히 반복하고도 왜 과학지식이 인식론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자의 비판은 스트롱프로그램에 대한 2세대 과학지식 사회학자들의 비판이며, 후자의 비판은 스트롱프로그램에 대한 구성주의자들의 비판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이론에 대하여 살펴보자.
2세대 과학지식 사회학 : 거시적 연구에서의 탈피 – 실험실연구
앞서 말한 스트퐁프로그램의 한계와 이에 대한 2세대 과학지식 사회학의 평가에서 다시 출발할 필요가 있다. 결국 과학의 실천을 강조할 뿐, 과학의 실천자를 주목하지 않는 연구방식에 대한 반발인 것이다. 2세대 과학지식 사회학의 대표적인 학자는 콜린스(Harry Collins)로 “어떻게 행위자의 행위가 이루어지는가”의 민속방법론적 궁금증을 과학지식사회학 연구에 도입하여, 실천자의 행위를 연구하게 된다. 즉, 이러한 실천자의 행위에 대한 연구는 실험실에서의 연구이며, 이 때부터 실천자의 실천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콜린스의 경우 실험의 복제와 실험자의 회귀에 주목하였다[17]. 실험의 복제에 관해서는 TEA 레이져를 다루는 실험실을 연구하게 되는데, 지식의 체계를 기존의 매뉴얼적 지식인 알고리즘 모형과, 그 이외에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암묵적 지식에 의해 전달되고, 확증되는 지식의 모형인 문화화모형을 말하며, 실험의 복제의 경우 후자의 모형을 따르며, 그러므로 실험의 복제는 사회적 성취라는 것을 강조한다.
반면 콜린스가 진행한 조셉웨버의 중력파탐지실험에 대한 연구에서는 실험자의 회귀라는 개념을 말하는데, 새로운 연구에서 좋은 데이터를 나타내 주는 것은 그 데이터를 산출한 기계가 좋은 기계나이고, 좋은 기계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기계에서 좋은 데이터를 산출해 냈는가가 되므로, 결국 좋은 연구의 기준에 대한 무한회귀가 일어나지만, 결과적으로는 과학자의 합의에 의해 어떠한 기기와 어떠한 데이터를 인정할까, 어떠한 데이터를 좋은 데이터라고 할 수 있을까가 정해지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위의 두가지 콜린스의 연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실천자들의 판단은 객관적 기준이 아닌 선입견과 과학 외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이론은 외부세계와 대응하며 실험실에서의 지식생산이 객관적 세계의 재현이라는 전통적 과학관이 기각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5. 구성주의 : 종합적 구성물로서의 과학지식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와 울가(Steve Woolgar)등의 학자는 구성주의적 과학관을 주창하였다. 내가 이해하는 구성주의적 과학관이 사회구성주의적 과학관과 다른 지점은, 사물까지 일종의 구성물로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물을 주체로까지 인정하느냐에 대해선 개인적 사견으로는 여전히 애매하고, 사물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사회구성주의랑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내가 읽은 어느 문헌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 이러한 점에서 극단적인 일원론에 기반한 극단적 상대주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라투르는 자신의 책 <실험실 생활>을 발전시켜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확립하는데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Network Theory)이란 일종의 행위자간 네트워크를 분석의 기본단위로 상정하고, 사물도 네트워크의 구성물이 될 수 있음을 가정하고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 따르면 네트워크 속 이해관계자가 변하듯 그것을 잡아두는 사물도 계속 변하므로 그 지식이 안정화 될 때 까지 네트워크가 어떻게 구성된 것이 성공적인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그러므로 과학이 하나의 안정된 지식으로 정착하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소도 고정지을 수 없게 된다.[18](이 고정지을 수 없다는 점이 사회구성주의, 특히 블루어의 지식결정의 벡터모형과의 차이가 아닌가 하는 사견을 가지고 있다.)
라투르의 이론은 앞서 스트롱프로그램에 대한 구성주의의 비판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도 한다. 라투르는 스트롱프로그램에 대해서 왜 과학지식이 인식론적, 물질론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이 질문을 구성주의 과학관에 의하여 설명하게 되면, ‘실험실’이라는 사물이 객관성을 부여해주는 ‘것으로 보이는’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험실이라는 사물마저 네트워크의 구성물로 보고 이를 전체적으로 해석해야 과학의 구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구성주의 역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앞서말한 사물의 주체성이라든지, 극단적 상대주의 경향이 비판의 소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행위자-네트워크이론에 따르면 사회와 경험 모두 아무것도 설명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사회학자 혹은 과학학자들의 역할을 현상기록을 하며 결과를 지켜보는 것에 한정시킬 수 밖에 없게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19]
지금까지 상대주의 과학관의 여러 분파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사례연구를 통해 위의 이론들을 대입해보기로 하자.
6. 사례연구 : 실증주의 과학관과 상대주의 과학관. 다른 관점으로 읽어보기
사실 실증주의 과학관의 대입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배운 교과서에서의 지식이라든가, 그 지식에 대한 진리관이라든가, 혹은 꼭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았더라 하더라도 지금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진 과학에 대한 보편적 지식관이 실증주의과학관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실증주의 과학관이다.
예컨데 골상학의 예를 생각해볼까? 실증주의 과학관에 입각하여 골상학의 예를 생각해본다면, 당시 의학에 대항하여 나왔던 골상학은 그 이론을 단지 실증적으로 증명해내지 못하였고(예컨데 평행론) 그러므로 21세기 현재 찾아볼 수 없는 도태된 가설이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상대주의적으로 이를 해석한다면, 첫째, 쿤의 이론에 이를 적용하면, 당시 군소패러다임이었던 골상학 패러다임은 당시의 의학이 설명해내지 못했던 부분을 설명해내면서 탄생하였지만, 의학패러다임과의 경쟁에서 정상과학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였으며, 이는 골상학이 합리적인 학문이 아니다거나 의학이 합리적인 학문이어서가 아니라고 설명할 것이다.
이를 사회구성주의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 의학과 골상학 논쟁을 둘러싼 해부학적 논쟁 자체도 사회적인 이해관계의 충돌로 발생하였으며, 당시 영국의 귀족사회의 상징이었던 의학과 이를 부정하고, 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그 운명이 정해져있다는 선천을 강조하며 귀족과의 평등을 주장하려 했던 부르주아 세력의 골상학의 논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하여 당시 이 연구를 진행했던 섀핀의 경우에는, 전두동의 예를 들며, 전두동의 존재는 골상학 논쟁 이후에나 그 존재가 밝혀졌으며, 또한 의학패러다임 세력과 골상학 패러다임 세력이 자신의 이론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 자체에도 합리적이지 않은 방법을 통해 지식의 확증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층적 분석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비단 골상학의 예 뿐은 아니다. 예컨데 오일러의 정리가 증명되던 방식도 이러한 방식으로 분석을 시도할 수 있다. V-e+f=2 라는 오일러의 정리는 수학자 코시가 증명하게 되는데, 코시의 증명방식은 다면체를 고무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하여 전개도를 펼치고, 삼각형을 만들며 v-e+f=1 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여 증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학자들은 그것은 펼칠 수 있는 다면체에서나 가능하다고 주장하게 되는데, 이에 뫼비우스는 다면체의 정의는 “두개의 다변형이 모든 모서리에서 만나며, 최대점을 통과하지 않고 한 면에서 다른면으로 이동할 수 있는 체계가 다면체”라고 주장하게 되는데, 이렇게 될 경우 또한 펼칠 수 없는 다면체에 있어서는 오일러의 정리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오일러의 정리를 만족시키려면 “가장 단순한 형태의 다면체에 한하여”라는 조건을 붙여줘야지만 오일러의 정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논쟁은 무한히 지속될 수 있으며, 논쟁을 멈추게 할 수학의 내적 요인은 존재하지 않고 결국 수학의 비공식적인 측면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수학을 구성해 나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방식은 상대주의적인 오일러의 정리의 해석방식이며 실증주의적으로 해석한다면, 포퍼의 반증주의를 차용하여, 오일러의 정리는 반증이 가능하므로 “가장 단순한 형태의 다면체”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다면체로의 반례가 출현하였으므로, 오일러의 정리는 반례 발견 이전까지는 과학이었지만, 반례가 발견된 이후에는 과학이 아니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7.결어
지금까지 약 열페이지에 걸쳐 실증주의 과학관과 상대주의 과학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열페이지의 노력을 거친 현재, 여전히 나는 사회구성주의자이다. 다만 다시 이론을 정리해보고 철학적 고민을 해 본 결과 내가 신봉하던 데이비드 블루어에 대한 신화는 무너진 것도 같다.
스트롱프로그램의 한계는 명확하다. 아직 민속방법론이 무엇이라고 뚜렷이 전달하지는 못하지만, 행위자를 무시하는 것은 실천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현재 내가 과학의 구성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2세대 과학지식사회학에 제일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사회구성주의가 왜 과학이 현재의 지위를 가지게 되는지는 여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상대주의적 과학관은 현재의 그런 지위를 가진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도전이지만, 왜 그런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을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한 개인적 아이디어는 있다. 1960년대 이후 머턴(Robert. K. Merton)과 벤다비드(BenDavid)등이 했던 연구인 과학사회의 규범에 대한 연구이다. 공유주의(Communism), 보편주의(Universalism), 비이해성(Disinterestedness), 제도화된 회의주의(Organized Skeptism)에 근거하여 과학사회가 객관성을 띄게 되었다는 연구에 영감을 얻는다면 이러한 사회적 요소의 구성이 스트롱프로그램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지 않을까에 대한 생각을 가진다.
그러나 아직 라투르 식의 구성주의 식에는 찬동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전히 사물까지 주체로 보는 경향은 동조하기 어렵다. 하지만 라투르 식의 분석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그동안 주시하지 못하던 사물의 역을 주시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미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원론적인 사고와 일원론적인 사고에 있어서는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각각 최초의 전제를 한 이후 이론을 확증해 나가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원론적이냐 일원론적이냐 라는 생각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과학학에 있어서 이 물음이 과학의 가장 중요한 두 요소인 과학의 실천자와 실천의 결과인 확증된 지식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느냐에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한 달동안 사회구성주의와 구성주의 등의 상대주의 과학관과 과학사의 대략적 경향에 대해서 원없이 논문과 책들을 읽었다. 과학도로서, 혹은 과학을 통해 살아갈 인문학도로서 객관성의 신화에 대한 합리적 의문과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내가 앞으로 어떠한 길을 걸어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사실상 직접인용한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굳이 인용을 하였다고 표현한다면 대부분 원문헌을 읽고 이를 토대로 저의 논증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가급적 찾을 수 있는 만큼 원문헌을 표기해 놓았습니다. 이 점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부교수
[2] 홍성욱, 『과학은 얼마나』,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04
[3] 자세한 글은 나의 블로그 http://leajk.egloos.com/5349491 『과학은 얼마나』(홍성욱)의 [1장. 과학은 얼마나 사회적으로 구성되는가?]에 대한 논평 참조.
[4]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김명자, 홍성욱 옮김, 까치, 2013
[5] Jonathan. H. Turner, ,『The Structure of Sociology Theory 7th』, p23 – 24, Thomson Wadswort, 2003 참조
[6]21세기 정치학 대사전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28449&cid=42140&categoryId=421 40 참조
[7] B.러셀,『서양철학사 (하)』, 2008, 제 7장 프랜시스 베이컨 (p.82 - 104) 참조
[8] B.러셀,『서양철학사 (하)』, 2008, 제 9장 데카르트 (p.105 - 120) 참조
[9] 김경만, 『과학지식과 사회이론』, 2004, p122 – 124 참조
[10]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p256 - 257 김명자, 홍성욱 옮김, 까치, 2013 참조
나는 위의 인용을 나의 언어로 재구성 하였지만, 쿤이 이 책에서 말한 내용은 정확히 이렇다.
“어느 주어진 시기에 당면하게 되는 퍼즐들을 모두 풀 수 있는 이론은 없다. 이미 얻은 풀이들 또한 완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반면에 어느 시기든 정상과학을 특징짓는 퍼즐들의 대부분을 정의하는 것은 기존의 데이터와 이론의 일치가 충분히 결정되지않았고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런 일치가 실패했다는 것이 이론을 거부하는 근거가 된다면, 모든 이론들은 어느 때에나 거부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단 한번의 심각한 실패가 이론의 폐기를 정당화 한다면, 포퍼 학파는 불가능한 정도나 반증의정도에 대한 어떤 규준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런 규즌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그들은 다양한 확률입증이론의 지지자들을 괴롭혔던 그런 어려움의 연결망에 당면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11]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이언해캥의 서문, 김명자, 홍성욱 옮김, 까치, 2013 참조
[12] 홍성욱, “누가 과학을 두려워하는가”, 한국 과학사학회지, 1997, 2.2절 참조
[13] 김경만, “과학지식사회학이란 무엇인가”, 계간 과학사상, 1994, 2절 참조
[14]데이비드 블루어, 『지식과 사회의 상(Knowledge and Social Imagenary),』,역자의 서문 제 2절 참조, 김경만 옮김, 한길사, 2004
[15]데이비드 블루어, 『지식과 사회의 상(Knowledge and Social Imagenary),』, p57 -58 , 김경만 옮김, 한길사, 2004 참조
[16]데이비드 블루어, 『지식과 사회의 상(Knowledge and Social Imagenary),』,p96, 김경만 옮김, 한길사, 2004
[17]홍성욱, 『과학은 얼마나,』,p43 - 50 참조,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04
[18]김경만, 『과학지식과 사회이론』, 2004, p248 - 254 참조
[19]김경만, 『과학지식과 사회이론』, 2004, p255 - 25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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